10월 30일 · 수의사 박근필
긴 글
「그때 더 빨리 병원에 갔더라면」 — 죄책감, 수의사가 답합니다
아이를 떠나보낸 보호자분들이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하시는 말은 「제가 잘못한 거죠?」입니다.
더 빨리 병원에 왔어야 했는데, 그 검사를 했어야 했는데, 마지막에 안락사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혹은 더 일찍 보내 줬어야 했는데.
방향은 제각각이지만 뿌리는 하나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다르게 했다면 아이가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스무 해 가까이 그 말을 들어 온 수의사로서 답을 드립니다.
먼저 그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때 알 수 있었던 것만으로 하신 결정을 두고 보호자님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왜 죄책감이 이렇게 커지나요?
죄책감은 책임을 느끼는 마음과 함께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의 건강을 자기가 챙길 몫으로 여겨 온 분은, 아이가 떠났을 때 자신의 판단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반려동물은 스스로 병원을 찾을 수 없고, 아프다고 말로 알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판단의 대부분을 보호자가 혼자 짊어져 왔고, 떠나보낸 뒤에는 그 판단 하나하나를 되감아 보게 됩니다.
그만큼 무거운 일을 해 오신 것입니다.
연구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2026년에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이 반려동물 보호자 143명의 온라인 응답을 분석했더니, 안락사를 언제 어떻게 결정할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슬픔, 후회, 죄책감이 나타났습니다.
같은 해 서울대 연구진이 개나 고양이와 10년 이상 함께 산 한국 보호자 24명을 면담한 연구에서도, 마지막 순간에 대한 어려운 결정이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두 연구 모두 소규모 질적 연구라 모든 보호자에게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죄책감이 크다는 것은 아이를 소중히 여겼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책감이 없다고 해서 사랑이 작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슬픔은 사람마다 다른 모양으로 옵니다.
그때 알았더라면 달라졌을까요?
「그때 알았더라면」에서 「알았더라면」은 결과를 보고 난 뒤에야 생긴 지식입니다.
결과를 알고 난 뒤의 판단은 알기 전의 판단과 같지 않다는 점을 다룬 연구로, 1975년 피시호프(Fischhoff)의 논문이 있습니다.
아이가 밥을 조금 덜 먹은 날, 그것이 큰 병의 시작인지 그냥 더운 날 때문인지는 그 순간에는 수의사인 저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자님은 그때 가진 정보로 최선이라고 생각한 길을 고르셨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결과로 그때의 선택을 채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병에 따라 다르지만, 제 진료 경험으로는 증상이 뚜렷해졌을 때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보호자의 잘못이 아니라 병이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안락사를 선택했거나 치료를 끝까지 이어 간 것이 잘못이었을까요?
안락사를 선택하신 분들의 죄책감은 특히 무겁습니다.
제 진료 경험으로는 안락사를 결정하신 보호자분 대부분이, 아이의 고통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서 자기 슬픔을 뒤로 미루고 결정하셨습니다.
사정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 순간 아이를 생각하지 않은 분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끝까지 치료를 선택하신 분도 아이와 하루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으로 결정하셨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 순간 아이를 위해 고른 길이었고,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습니다.
죄책감이 오래 이어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죄책감이 오래 줄지 않거나, 스스로를 벌주는 생각이 반복되거나, 일상이 흔들린다면, 시기와 상관없이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전문가와 이야기 나누시기를 권합니다.
죄책감은 혼자 되풀이할수록 커지고, 밖으로 꺼내 놓으면 가벼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해」라고 편지를 써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쓰다 보면 「미안해」 뒤에 「고마웠어」가 따라 나온다는 분이 계십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 편지를 쓸 수 있는 자리를 아래에 남겨 둡니다.
펫러스(PETLUS) 쉼터는 전문 상담을 대신하는 곳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겪는 깊은 슬픔과 우울, 흔히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이라고 부르는 마음이 오래 이어진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함께 받으시길 권합니다.
마음이 많이 힘드실 때는 사랑의전화복지재단 상담센터 1566-2525(펫로스 상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24시간)에 전화하실 수 있습니다.
보호자가 가장 많이 묻는 질문에 답한 책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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