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 수의사 박근필
긴 글
잊어야 괜찮아지는 걸까요? —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과 「계속되는 유대」
「이제 그만 잊어야지.」
떠나보낸 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꼭 잊어야 괜찮아지는 걸까요.
오늘은 이 질문을 두고 사별 연구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 왔는지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연구가 말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도 함께 적겠습니다.
「극복」과 「이어 가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은 정식 의학 진단명은 아닙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겪는 슬픔과 그리움, 죄책감 같은 반응을 두루 일컫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극복이라는 말이 아이를 과거에 두고 혼자 앞으로 가라는 말처럼 들려서 마음이 더 무겁다고 하시는 보호자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극복 대신 「이어 가기」라는 말을 쓰겠습니다.
『Continuing Bonds』라는 책은 무엇을 말했나요?
1996년 미국에서 『Continuing Bonds: New Understandings of Grief』라는 책이 출간됐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계속되는 유대: 슬픔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정도가 됩니다.
데니스 클라스(Dennis Klass), 필리스 실버먼(Phyllis R. Silverman), 스티븐 닉먼(Steven L. Nickman)이 엮은 책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20세기에 널리 받아들여진 애도 모델은 슬퍼하는 사람이 떠난 이와의 연결을 끊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책은 그 생각이 연구 자료보다 문화적 통념에 더 기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슬픔에도 떠난 이와 이어지는 유대가 포함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출판사는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 사별한 아이와 부모, 형제자매, 입양된 사람, 일본 문화 속 애도 등을 다룬 글이 실려 있다고 소개합니다.
이 책은 사람의 사별을 다룬 책입니다.
출판사 소개에는 반려동물 상실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경우에도 같은 이야기가 그대로 맞는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잊어야 낫는다」는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참고 자료는 된다고 봅니다.
이어 가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나요?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2006년 학술지 『Death Studies』에 실린 연구가 한 예입니다.
미국 참가자 61명과 중국 참가자 58명이 사별 4개월째와 18개월째에 떠난 이와의 유대 정도와 적응 상태를 답했습니다.
중국에서는 4개월째 유대가 높았던 사람이 18개월째 적응이 더 좋았습니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4개월째 유대가 높았던 사람이 18개월째 적응이 더 나빴습니다.
연구진은 슬픔을 돕는 방법을 정할 때 문화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이 연구도 사람의 사별을 다룬 연구이고, 한국 보호자나 반려동물 상실에 대한 결과는 아닙니다.
이어 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를 두고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이 연구는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어 가면 반드시 낫는다」도, 「이어 가면 안 된다」도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방식이 나에게 편한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어 가면 되나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이 사진을 거실에 두고 아침마다 인사하는 분도 있고, 당분간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기일에 꺼내는 분도 있습니다.
산책길을 그대로 걷는 분도 있고, 한동안 피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을 치웠다고 아이를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사진을 두었다고 슬픔이 더 길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 이름을 입 밖에 내는 것입니다.
가족끼리 「얘가 있었으면 지금 창가에 와 있었겠지」 하고 말해 보는 것도 그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이가 남긴 것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입니다.
목걸이, 발 도장, 자주 자던 담요 같은 것입니다.
전부 간직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방법들은 효과가 연구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 예시입니다.
새 아이를 맞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되고, 미루지 않으셔도 됩니다.
때가 됐다고 느끼실 때 천천히 정하시면 됩니다.
아직 아니라고 느끼신다면 그것도 맞습니다.
아이와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으시다면, 이름을 밝히지 않고 편지를 쓸 수 있는 펫러스(PETLUS) 쉼터가 있습니다.
다른 보호자분들의 편지를 읽기만 하셔도 됩니다.
글쓰기는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겪는 깊은 슬픔과 우울, 흔히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이라고 부르는 마음이 오래 이어진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함께 받으시길 권합니다.
마음이 많이 힘드실 때는 사랑의전화복지재단 상담센터 1566-2525(펫로스 상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24시간)에 전화하실 수 있습니다.
혼자 견디기 어려우시면 펫로스 치유 글쓰기(펫러스) 안내를 읽어 보시거나, 이름 없이 편지를 남기는 펫러스 쉼터에 들러 주세요.
이 글은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드실 때는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24시간)로 먼저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