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 수의사 박근필
긴 글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 가족을 잃은 슬픔만큼 클 수 있을까요? —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에 대한 연구
「사람이 떠난 것도 아닌데, 제가 너무 유난인가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분들이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입니다.
슬픔이 큰 만큼, 그 슬픔을 부끄러워하는 분도 많습니다.
올해 나온 연구 하나가 이 질문에 숫자로 답했습니다.
연구는 무엇을 조사했을까요?
2026년 1월, 아일랜드 메이누스대학교 필립 하일랜드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PLOS One』에 논문을 냈습니다.
영국 성인 975명에게 지금까지 떠나보낸 대상과 그 뒤의 슬픔을 물었습니다.
이 가운데 32.6%가 사랑하던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ICD-11)에 있는 「지속비탄장애」 기준으로 슬픔의 정도를 쟀습니다.
지속비탄장애는 떠나보낸 뒤 오랫동안 그리움과 고통이 일상을 흔들 만큼 이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 가운데 7.5%가 지속비탄장애 기준에 해당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경우는 7.8%, 다른 가족은 8.3%, 형제자매는 8.9%, 배우자는 9.1%였습니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이 친구나 가족을 잃은 슬픔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뜻입니다.
부모(11.2%)와 자녀(21.3%)를 잃은 경우만 뚜렷하게 높았습니다.
반려동물과 사람을 모두 떠나보낸 사람 가운데 다섯 명 중 한 명(21%)은 「반려동물의 죽음이 가장 힘들었다」고 답했습니다.
논문 제목이 「No pets allowed」인 이유
논문 제목은 「반려동물은 들어갈 수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의 진단 기준은 「사람」의 죽음을 전제로 쓰여 있습니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기준(DSM-5-TR)도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반려동물의 죽음 뒤에도 같은 수준의 슬픔이 생길 수 있으니, 기준에 반려동물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이 연구는 영국에서 이뤄졌고, 연구진도 다른 나라에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연구진이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성인 137명을 조사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137명 가운데 55%가 복합 비탄의 기준을 넘었습니다.
다만 온라인으로 모집했기 때문에 힘든 분들이 더 많이 응답했을 수 있다고 연구진이 직접 밝혔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보호자 전체의 비율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이 가볍게 지나갈 일이 아니라는 점은 두 연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내 슬픔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반려동물은 매일 밥을 주고, 산책을 하고, 아플 때 곁을 지키던 존재입니다.
하루하루의 돌봄이 사라진 자리가 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유난」이 아니라, 그만큼 깊이 함께 살았다는 뜻입니다.
다만 진단은 전문가가 하는 일이고, 이 글은 진단이 아닙니다.
몇 달이 지나도 일상이 버겁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그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남겨 보는 것도 마음을 정리하는 한 방법입니다.
혼자 견디기 어려운 날에는 사랑의전화복지재단 상담센터 1566-2525(펫로스 상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에 전화하셔도 됩니다.
글쓰기는 전문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혼자 견디기 어려우시면 펫로스 치유 글쓰기(펫러스) 안내를 읽어 보시거나, 이름 없이 편지를 남기는 펫러스 쉼터에 들러 주세요.
이 글은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드실 때는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24시간)로 먼저 연락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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