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 수의사 박근필
긴 글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은 병명인가요? — 이별 뒤 슬픔이 이상한 게 아닌 이유
동물병원에서 스무 해 가까이 일하며 자주 들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이상한 건가요?」
아이를 떠나보내고 몇 달이 지났는데도 사료 봉지를 못 버리겠다고, 현관 소리가 나면 자꾸 귀를 세우게 된다고 하시면서 보호자분들은 꼭 이 말을 덧붙이십니다.
오늘은 이 물음에 수의사로서 답을 드립니다.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은 병명인가요?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은 반려동물을 잃은 뒤 찾아오는 슬픔, 그리움, 죄책감, 무기력 같은 마음과 몸의 반응을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정식 진단명은 아닙니다.
그러니 「증후군」이라는 단어 때문에 내가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슬픔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 이렇게 아픈가요?
반려동물과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보호자분이 많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길고 일상에 스며 있을수록, 그 아이가 없는 자리를 알려 주는 물건과 소리도 많아집니다.
밥그릇, 산책줄, 화장실 모래, 발소리처럼 하루에 여러 번 마주치던 것들이 모두 빈자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슬픔이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 주변에 슬픔을 말하기 어려운가요?
사별 연구자 케네스 도카(Kenneth Doka)는 1989년에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disenfranchised grief)」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주변이 그 상실을 상실로 인정해 주지 않아, 드러내 놓고 슬퍼할 자리를 얻지 못하는 슬픔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이 개념으로 자주 설명되는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 소속 연구자가 2025년에 발표한 면담 연구(동물을 돌본 사람 31명)도, 반려동물의 죽음이 사회의 통념 속에서 가볍게 여겨지기 쉽고 그 때문에 많은 보호자가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을 겪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소규모 면담 연구여서 모든 보호자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고작 동물」이라는 말 앞에서 입을 다물어 본 적이 있으시다면, 이 개념이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슬픔이 크지 않으면 덜 사랑한 것인가요?
식욕이 떨어지고, 잠이 오지 않고, 길에서 비슷한 아이를 보면 눈물이 나는 것은 사랑하던 존재를 잃은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반대로 눈물이 적거나 담담하다고 해서 덜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슬픔이 드러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슬픔 말고 다른 마음이 함께 든다고 해서 사랑이 작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슬퍼할 기간은 남이 정해 줄 수 없습니다.
「이제 그만 슬퍼해」라는 말을 들어도, 함께한 시간을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몇 달이든 그보다 길든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잠, 식사, 일상생활이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거나 스스로를 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기간과 상관없이 바로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전문가를 찾아 주세요.
그 전이라도 상담은 언제든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슬픔을 말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열어 두었습니다.
펫러스(PETLUS) 쉼터는 전문 상담을 대신하는 곳이 아닙니다.
마음을 꺼내 놓는 연습을 해 보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가까이 지낸 존재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글쓰기는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겪는 깊은 슬픔과 우울, 흔히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이라고 부르는 마음이 오래 이어진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함께 받으시길 권합니다.
마음이 많이 힘드실 때는 사랑의전화복지재단 상담센터 1566-2525(펫로스 상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24시간)에 전화하실 수 있습니다.
혼자 견디기 어려우시면 펫로스 치유 글쓰기(펫러스) 안내를 읽어 보시거나, 이름 없이 편지를 남기는 펫러스 쉼터에 들러 주세요.
이 글은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드실 때는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24시간)로 먼저 연락해 주세요.
관련 글 — 긴 글
- 아이의 마지막을 정할 때 마음이 갈라지는 건 이상한 일일까요? — 보호자 143명의 응답
- 왜 이름 없이 쓰는 쉼터를 열었을까요? — 펫러스(PETLUS) 쉼터가 지키는 약속
- 잊어야 괜찮아지는 걸까요? — 펫로스 증후군(펫로스 신드롬)과 「계속되는 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