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 수의사 박근필
긴 글
반려동물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 수의사가 드리는 답
"그 순간에 제가 옆에 없었어요."
동물병원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반려동물을 보내고 몇 년이 지나도 보호자분들이 붙들고 계신 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면 내 잘못인가요?
아닙니다. 마지막을 지키고 못 지키고는 운입니다.
품에 안고 있을 때 눈을 감는 아이도 있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스물네 시간 곁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한,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습니다.
입원 중에 떠났다면, 병원에 맡긴 게 잘못인가요?
"데려갈걸. 집에서 같이 있어 줄걸."
입원 중에 아이를 보낸 보호자분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입니다.
그런데 병원에 맡긴 건 살리고 싶어서였습니다.
낫게 하려고 한 선택을 포기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열일곱 해를 산 고양이 솜이는
마지막 두세 해를 누님 댁에서 지내다 그곳에서 떠났습니다.
저는 곁에 없었습니다.
수의사인 저조차도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권합니다.
미안한 마음은 짧게 가지세요.
그리고 내가 없었다는 쪽 말고, 그때 누가 곁에 있었는지를 보세요.
자책이 오래갈 때, 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그 아이와의 가장 사랑스러웠던 장면 하나를 한 줄로 적어 보세요.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떠올리면 입꼬리가 올라가는 장면으로요.
펫로스 치유 글쓰기(펫러스, PETLUS) 모임의 한 참가자는
행복했던 기억을 써 보니 자책이 많이 줄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펫러스는 펫로스·러브·쓰다를 합친 말로, 떠나보낸 마음을 사랑을 담아 쓴다는 뜻입니다.
PETLUS는 PET Love US, 「그 아이가 우리를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더 잘해 줬어야 했다는 자책 옆에, 그 아이가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함께 놓아 보세요.
사랑을 다한 사람에게 자책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늘 떠오르는 그 아이의 장면은 무엇인가요?
혼자 견디기 어려우시면 펫로스 치유 글쓰기(펫러스) 안내를 읽어 보시거나, 이름 없이 편지를 남기는 펫러스 쉼터에 들러 주세요.
이 글은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드실 때는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24시간)로 먼저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