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 수의사 박근필

긴 글

슬플 때 글을 쓰면 정말 도움이 될까요? — 표현적 글쓰기 연구 40년이 말해 주는 것

「쓴다고 정말 달라지나요?」
글쓰기로 슬픔을 다독여 보자고 하면 많은 분이 먼저 묻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 경험이 아니라 연구가 무엇을 말하는지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1986년, 나흘 동안 15분씩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 연구팀이 대학생 46명에게 실험을 했습니다.
나흘 저녁 연속으로, 하루 15분씩 글을 쓰게 했습니다.
한 집단은 살면서 겪은 가장 힘든 일을 썼습니다.
사실만이 아니라, 그때 느낀 감정까지 함께 쓰게 했습니다.
다른 집단은 사소한 주제를 썼습니다.

결과는 이랬습니다.
힘든 일의 사실과 감정을 함께 쓴 학생들은 그 뒤 6개월 동안 학교 건강센터를 한 번도 찾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주제를 쓴 학생들은 평균 1.33번 찾았습니다.

눈여겨볼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쓴 직후에는 오히려 혈압이 오르고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쓰는 동안 더 슬퍼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40년 동안 쌓인 결과 — 「분명히 있지만, 작다」

이 실험 뒤로 비슷한 연구가 아주 많이 나왔습니다.
2006년, 무작위 연구 146편을 한데 모아 분석한 결과가 학술지 『Psychological Bulletin』에 실렸습니다.
글쓰기의 효과는 분명히 있었지만, 크기는 작았습니다.

우리나라 연구도 있습니다.
2023년 국내 연구 29편을 모아 분석한 결과가 학술지 『Frontiers in Psychiatry』에 실렸습니다.
여기서도 효과는 작은 편이었고, 서양 연구와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꼭 말씀드려야 할 연구가 있습니다.
2002년, 최근에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같은 방식의 글쓰기를 하게 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고통도, 병원을 찾는 횟수도 뚜렷하게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쓰면 슬픔이 낫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쓰는 이유

그렇다면 왜 쓰자고 할까요?
글쓰기는 돈이 들지 않고, 언제든 혼자 할 수 있고, 해가 거의 없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도움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연구가 말하는 「도움이 더 커지는 조건」

2023년 국내 분석에서 효과가 더 컸던 조건은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아무렇게나 쓰기보다 질문이나 틀이 있는 글쓰기.
둘째, 한 번에 15분보다 길게.
셋째, 한두 번이 아니라 네 번 이상.
넷째, 쓴 직후보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효과가 더 잘 보였습니다.

다만 이 분석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분들만 따로 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펫로스에도 똑같이 들어맞는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펫로스 치유 글쓰기(펫러스, PETLUS)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4주 과정처럼 여러 번 이어 쓰는 방식으로 열고 있습니다.

오늘 해 볼 수 있는 15분

시간을 15분으로 맞춰 두세요.
그리고 아래 질문 하나에만 답해 보세요.

「그 아이와 함께한 하루 중, 지금도 또렷한 장면은 무엇인가요?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잘 쓸 필요는 없습니다.
맞춤법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쓰다가 눈물이 나면 잠시 멈추셔도 됩니다.
쓰는 동안 더 슬퍼질 수 있다는 것은 연구에서도 보였던 일입니다.

글쓰기가 할 수 없는 일

글쓰기는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일상이 버겁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기관의 도움을 함께 받으시길 권합니다.
혼자 견디기 어려운 날에는 사랑의전화복지재단 상담센터 1566-2525(펫로스 상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에 전화하셔도 됩니다.
글쓰기는 그 곁에서 할 수 있는 일 하나입니다.

혼자 견디기 어려우시면 펫로스 치유 글쓰기(펫러스) 안내를 읽어 보시거나, 이름 없이 편지를 남기는 펫러스 쉼터에 들러 주세요.

이 글은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드실 때는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위기상담 1577-0199(24시간)로 먼저 연락해 주세요.

관련 글 — 긴 글

← 노트 전체 보기